우리 함평지역에는 통일신라시대의 유적과 유물이 없었던 것으로 정리되었었으나, 근래에 와서 해보면 광암리에 있는 용천사가 이 시기에 창건되었던 것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용천사가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과 6.25전쟁 등 두 차례에 걸쳐 전화를 입어 송두리째 불타버려 그 자세한 내력을 밝힐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1911년(명치44) 3월 31일 조선총독부 내무부 지방국에서 발행한 증보교정「조선사찰사료(朝鮮寺刹史料)」에 용천사의 창건시기와 창건자, 그리고 간단한 연혁이 소개되고 있어 일부나마 그 정황을 밝힐 수가 있었습니다. 이 자료집에 수록된 용천사 관련 내용을 살펴보면「全羅南道 咸平郡 龍泉寺 大雄殿 懸板 丹靑記」라는 제목으로 시작됩니다. 내용을 간추려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용천사는 당(唐)나라 현종조(玄宗朝:재위연간712~756)때 즉 통일신라 8세기 중반경에 국행사존사(國幸師尊思)라는 사람에 의해 창건되었습니다. 용천사의 명칭은 폭포수 같은 물이 땅속에서 솟구쳐 나오므로 인해 명명되었으며, 순정 7년(1634) 임신(1632)에 보전(寶殿 대웅전)을 신설 중창하고, 이후 무인년(1638)에는 쌍연(雙衍)이라는 스님이 새로 단청했습니다. 탑비각서(塔碑刻書) 공양시주질(供養施主秩)에 의하면 재차 단청을 하기위해 1685년(숙종11) 6월 공양시주를 받아 기금을 마련한 다음 쌍연스님이 단청한 이래 67년이 지난 1705년(숙종31) 윤 4월 재차 단청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이 때 다시 단청을 하게 된 동기와 작업과정을 살펴보면, 수차례의 풍우로 인해 처마가 갈리고 씻겨져 붉은 무늬가 지워지고 다 떨어져 나가 검은 빛이되니 사람들이 이것을 보는바 탄식하지 않는자가 없어 이에 산중의 승려들과 시주자들이 화공(畵工)을 초청하여 붉게 채색칠로 개조하게 되니 비로소 번쩍 빛나는 모습의 문물을 볼 수 있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어쨌든 이러한 기록들은 현재 용천사 내에 소재하고 있는 각종 유물에 명기된 명문에 의해서도 증명되고 있습니다. 예컨대 1685년에 만들어진 석등과 1688년의 괘불석주, 그리고 이러한 중창불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입적한 회백당 대사의 부도가 1692년에 만들어진 것 등이 그러한 것들입니다. 이처럼 용천사는 정유재란의 피해를 당한 후 약 1백년이 지난 뒤인 17세기 후반에서 19세기 후반 사이에 대규모의 가람으로 발전했던 것 같습니다. 한편 창건 당시의 용천사는 이웃한 영광군 불갑면에 있는 불갑사와 함께 전남의 서해안지역에서는 대표적인 거찰(巨刹)이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근년에 접어들어서는 6.25전쟁 당시 전소당한 후 한동안 복구작업이 이루어지지 않다가 1964년 금당(錦堂)스님이 약 10평의 대웅전을 복원했고, 1984년에는 박상철스님에 의해 21평의 요사채가 건립되었습니다. 그리고 1988년 7월 27일 이명심(李明心)보살이 주지로 있을 때 전통사찰로 등록되었습니다. 그 뒤의 주지스님은 심원(深元 法號 默菴, 俗名 申宗奎)스님이며, 1996년에 10평의 대웅보전을 헐고 새로이 28평의 대웅보전을 복원하였고 1997년에 사천왕문을 신축하였습니다. 용천사는 대웅전 1동과 요사채 2동 등 소규모의 사찰이나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석탑과 석등이 있으며 그외 괘불석주가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 후기에는 상당한 규모의 가람을 갖추었던 것 같습니다. 현재 군 당국이 관광사업의 일환으로 대웅전을 다시 증개축 중창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뜯겨진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인 팔작지붕으로 부연을 설치한 겹처마집이었습니다. 이는 후일 참고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위해 그 현황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건물 구조를 보면 낮은 석축의 기단위에 덤벙주초를 놓고 원주를 세웠습니다. 원주 위로는 창방을 깔고 그 위에 평방없이 앙, 수서가 나온 2익공의 공포를 쌓았습니다. 기둥과 기둥사이에는 화반을 깔았으며 장혀와 도리가 연결되어 서까래를 받치고 있습니다. 대웅전 우측에 있는 요사채는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전퇴를 둔 팔작집입니다. 또 하나의 요사채는 대웅전과 일직선상의 우측에 있는데 소규모의 민가형태의 건물입니다.
함평읍 석성리 석두마을에 자리하고 있는 해수욕장이다. 석두(石頭)라는 이름은 원래 돌머리라는 우리말로 된 마을 이름을 한자어로 쓰다보니 석두가 되어 버렸다. 이 해수욕장은 확트인 서해안을 바라보며 깨끗한 바닷물과 은빛 찬란한 백사장 1,000m가 펼쳐져 있으며 수천평의 소나무 숲이 어우러진 천혜의 절경을 자랑하는 곳이다. 특히 타지역 해수욕장에 비하여 간만의 차가 심한점을 극복하기 위하여 8,000여㎡의 인공풀장을 자연스럽게 해변가 백사장에 조성하고 초가원두막, 야영장, 주차장 등의 편의시설도 넓게 확충하여 사용 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또한 갯벌에는 게, 조개, 해초류가 많아 자녀들의 자연 학습장으로도 활용 되고 있으며 인근 연안에서는 세발낙지와 보리새우가 빼놓을 수 없는 별미로 손꼽히고 있다.
함평군청 근처 비빔밥 거리에서 펼쳐진다. 시골장터의 소박한 재미는 물론 이른 새벽 우시장이 먼저 열려 함평 먹거리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다. 앞서 설명했듯 함평은 한우가 유명하다. ‘함평천지한우’라는 독자적인 브랜드도 있다. 왜 맛있을까, 라는 궁금증은 나비축제가 진행된 것과 같은 이유라고 짐작할 수 있다. 비옥한 땅과 물, 그리고 깨끗한 공기. 질 좋은 한우를 위해 무엇이 더 필요할까. 한우와 함께 이곳 별미로 꼽히는 육회비빔밥 역시 같은 맥락이다. 한우가 유명해 우시장이 함께 발달했고 우시장 덕분에 신선한 육회를 넣은 비빔밥이 별미로 자리 잡았다.
목포에서 서쪽으로 6km 떨어진 "사랑의 섬 외달도" 는 청정해역의 때 묻지 않은 자연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주변에 크고 작은 섬들이 다도해의 아늑함을 느끼게힌다. 푸르게 반짝이는 바다, 해수욕장의 고운 모래톱, 아름다운 낙조 등 경관이 아름다워 가족과 연인들이 즐겨찾는 곳이다. 아이들에게는 갯벌체험, 조개채취 등 체험학습과 신나는 물놀이를 , 부모들은 민박집의 푸짐한 밥상과 가족단위등반 및 산림욕을 즐길 수 있고, 연인에게는 탁 트인 해변이 내려다 보이는 산책로, 고풍스러운 한옥민박을 경험 할 수 있다. "2009~2010년 2년 연속 우수해수욕장"으로 선정된 “사랑의 섬 외달도”는 휴양지로서의 조건을 빠짐없이 갖추고 있어 관광객들의 소중한 추억을 더욱 더 오랫동안 기억에 남게 해줄 것이다. 외달도 해수풀장해수풀장은 바닷물을 끌어 조성한 인공풀장이다, 어린이풀장, 성인풀장, 대형풀장이 있으며, 어린이는 수중모험놀이기구, 성인은 대형 바디슬라이더를 즐길 수 있고 해수욕장 옆으로 소나무 숲과 해변원두막, 대형그늘막 등 편의 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외달도 배편 연락처 : 신진해운 061-244-0522